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오스카 와일드: "대중은 아름다움의 새로운 방식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과 마주칠 때마다 분노하고 당혹해하면서 언제나 바보 같은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나는 예술 작품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이 지극히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예술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말했거나 전에 없던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후자는 예술가가 사실을 말했거나 그것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형상화했음을 의미한다. 전자는 스타일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소재에 관한 것이다."


지혜는 없다. 많은 지혜들이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망상적인.

🔖 이 대목에서 맨 뒤의 '아름답고 망상적인'의 반짝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설 읽기만 한 시간 낭비는 또 없다. 그런데 데이비드 실즈의 이 책이 특별한 점은, 그가 삶을 맹렬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가상의 세계로 도망쳐 지내기 위해 소설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만큼 소설 밖의 세상에서 해서 좋은 것, 안 해도 되는 것,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등을 열심히 하며 산다.


🔖 이 시기에 대해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철봉에서 대회전을 하는 사람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소년 시절에는 스스로가 회전식 추첨기를 돌리는데, 그곳으로부터 빠르든 늦든 대박이 터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15살 때 알고 있던, 아니면 하고 있던 것만이 이후 어느날 우리의 매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부모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한 나이 때에는 48시간만 방치되어도 그것으로부터 삶의 행복의 결정이 알칼리 용액 속에서처럼 형성된다."


🔖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온통 뒤범벅이 된다. 있는 힘껏, 내가 무엇이 될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아주 좋은 책과 아주 좋은 여행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보통의 책과 보통의 여행도, 나쁜 책과 나쁜 여행도 나를 조금씩, 하지만 영구적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리라고. 나빴다고 생각한 일이 나중에 더 좋은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을 구경하며 깨달은 것을 내가 경험으로 배운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를 이해했고, 그들과 직접 만난 경험은 책을 더 잘 이해하게 했다. 언제나 시작은 책이었고 여행이었으며, 그 둘은 마치 걷는 일이 그러하듯이,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나를 과거에서 현재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보다 먼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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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통해 원하는 삶을 기획하기. 언제나 책과 여행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읽기와 경험학, 쓰기는 내가 나 자신을 탐색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들이었다.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는 삶의 진실 중 하나. 나라는 인간의 특성이자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젊음이었다. 여행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비행기 타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경유항공편 타기가 취미였다. 침대 여덟 개 있는 도미토리 룸에서 자고, 아침엔 바나나 하나 저녁엔 기네스 파인트 한 잔으로 사흘씩 돌아다녔다. 숙박비가 아까우면 도시 간 이동은 심야버스나 심야기차를 이용했고,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냥 젊어서 그런 것이었다. 아침보다는 밤에 원고를 더 잘 쓷나든가, 술 마시며 밤새도록 어울리길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 전부.


🔖 퇴근 뒤에 글을 쓴다는 허황된 계획이다. 허황되었단 말을 하는 이유는 회사라는 곳이 당신에게 여분의 에너지를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백하자면 나도 그런 꿈을 꾸었다. 헛된 꿈을. 그리고 원고를 쓰지 못한 채 새해목표로 '내 글 쓰기' 같은 말을 20년째 하는 사람이 되었다.